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[[파일:Screenshot 2020-07-30 at 07.37.00.png]] ||<-3> '''{{{#abf200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}}}''' || || '''제1당''' || [include(틀:민주공화당)] + [include(틀:유신정우회)] || '''68석''' + {{{#ff00ff '''77석''' }}} || || '''제2당''' || [include(틀:신민당(1967년))] || '''61석''' || || 제3당 || [include(틀:민주통일당)] || 3석 || || - || [include(틀:무소속)] || 22석 || ||<-6> '''제10대 국회의원 선거''' || || 지역 || [include(틀:민주공화당)][br][include(틀:유신정우회)] || [include(틀:신민당(1967년))] || [include(틀:민주통일당)] || [include(틀:무소속)] || 합계 || || 서울 || 9 || {{{#ffffff 11 }}} || 1 || 1 || 22 || || 경기 || {{{#ffffff 8 }}} || 7 || 0 || 1 || 16 || || 강원 || {{{#ffffff 5 }}} || 3 || 0 || 2 || 10 || || 충남 || {{{#ffffff 7 }}} || 5 || 0 || 2 || 14 || || 충북 || 3 || {{{#ffffff 4 }}} || 1 || 0 || 8 || || 전남 || {{{#ffffff 8 }}} || 7 || 1 || 4 || 20 || || 전북 || {{{#ffffff 6 }}} || 4 || 0 || 2 || 12 || || 부산 || 4 || {{{#ffffff 5 }}} || 0 || 1 || 10 || || 경남 || {{{#ffffff 8 }}} || 7 || 0 || 3 || 18 || || 경북 || {{{#ffffff 9 }}} || 8 || 0 || 5 || 22 || || 제주 || {{{#ffffff 1 }}} || 0 || 0 || 1 || 2 || || 간선 || {{{#ffffff 77 }}} || - || - || - || 77 || ||<|2> 합계 || {{{#ffffff 68 }}} ||<|2> {{{#ffffff 61 }}} ||<|2> 3 ||<|2> 22 ||<|2> 231 || || {{{#ffffff 77 }}} || ||<-7> {{{#ffffff '''정당 득표율''' }}} || || 정당 || 득표수 || 득표율 || 당선인 || || [include(틀:신민당(1967년))] || 4,861,204 || {{{#dc352a,#55ffd0 '''32.82%'''}}} || 61[*A 지역구] || || [include(틀:민주공화당)] || 4,695,965 || {{{#835B38,#5757ff '''31.70%'''}}} || '''68'''[*A 지역구] || || [include(틀:무소속)] || 4,160,187 || 28.09% || 22[*A 지역구] || || [include(틀:민주통일당)] || 1,095,057 || 7.39% || 3[*A 지역구] || || [include(틀:유신정우회)] ||<-2>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|| 77[*B 임명제 국회의원] || || 총합 || 15,023,340 || 100.0% || 231[*C 지역구 + 유신정우회 의원 합계] || '''[[대한민국 제4공화국|유신 체제]] 몰락의 도화선'''. 관권선거가 여전한 가운데서도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충격적이게도 '''야당의 전국 득표율이 여당을 앞서는''' 선거 결과가 나와버렸다. 신민당 32.8%, 민주공화당 31.7%, [[민주통일당]] 7%, 무소속 28%. 당선인 수는 공화당 68석, 신민당 61석, 민주통일당 3석, 무소속 22석. [[민주공화당]]이 득표는 더 적었으나 중선거구제의 혜택으로 1당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,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은 9석을 늘렸지만 2당 자리를 유지했다. 유신 체제 이후 독재 연장을 위해 성립된 [[유신정우회]]는 [[통일주체국민회의]]를 통한 [[간선제]] 방식으로 선출되었다.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상기한 스캔들과 물가 폭등, 주가 하락과 기업 부도 사태, [[부가가치세]] 철폐를 내세운 신민당의 선거전략 등이 거론되었다. 유신정우회 덕분에 과반 의석은 확보했다지만 득표율에서 야당에 뒤졌다는 것에 경악한[* 한국의 집권여당이 이런 수준의 득표율을 올린 것은 [[1950년]] [[2대 총선]](20% 전후) 이래 최초였다. 그나마도 2대 총선 당시에는 정당제가 정착되지 않아서 온갖 군소정당들과 무소속 후보들이 난립하던 상황으로 이 당시 원내정당만 9석에 무소속은 126석을 얻었던 상황이였다.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계로 봐도 최저 득표는 [[2016년]] [[20대 총선]]의 비례득표 33.5%이다. 물론 보통은 다른 선거도 30%대에서 나오긴 했지만, 그래도 근 30여년에 한 번 있을 만한 참패였던 것.] 민주공화당은 선거 부진의 책임을 부가가치세와 물가 상승 때문이라고 보고 경제팀에 책임을 돌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이 해 12월 23일에 부가세 도입을 주도한 [[남덕우]](경제기획원 장관), [[김정렴]](대통령비서실장) 등을 경질하는 개각을 단행한다. 선거 결과에 고무된 신민당은 1979년 5월 [[전당대회]]에서 대정부 온건파격이던 [[이철승]]계가 퇴조하고 강경파격인 [[김영삼]]계가 당권을 잡으면서 박정희 정권과 각을 세우게 된다.[* 여기에 민주통일당도 신민당에 전면적으로 협력했다.] 이 과정에서 친야 무소속 의원 7명이 신민당에 입당해서 68명으로 민주공화당과 동수를 이루자, 민주공화당은 나머지 무소속 의원 15명을 입당시켜서 세를 불려 맞섰다.[* 어차피 [[유신정우회|대통령 친위세력]]이 있어서 입법부 안에서 여권이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무소속 의원을 입당시켜서 세를 불린 건 사실 신민당에 대한 견제라기보다는 유신정우회에 대한 견제라고 봐야 한다. ] --물론 그런다고 해서 선거 때 떨어진 명예가 회복되지는 않았다.-- 그리고 이러한 극한대립은 결국 [[YH 사건]]과 [[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]], [[부마민주항쟁]], [[10.26 사건]]으로 이어지면서 유신체제의 종말로 치닫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